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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영화 소개
광해군 8년, 봉당 정치의 혼란 속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점점 난폭해져 가던 광해는 자신을 대신해 희생될 대역을 찾는다. 허균은 저잣거리에서 광해와 똑같이 생긴 만담꾼 하선을 발견하여 궁으로 데려가 가끔 왕을 대신하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광해군이 갑자기 쓰러지게 되고 위중한 왕의 병세에 허균은 비밀리에 광해를 피신시키고 하선을 왕의 대역으로 궁에서 살게 한다. 왕을 대역을 하고 있는 하선은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다. 왕이 남긴 음식만을 먹여야 하는 궁녀들의 식사를 위해 일부러 음식을 남기고 이를 본 조내관은 그의 따뜻한 마음에 미소를 짓는다.
그 시간 허균은 광해가 독이 아니라 약에 중독된 것임을 알게 되지만 허균의 추적을 눈치챈 박충서는 양귀비 밭을 다 태워 증거를 없앤다. 왕으로 살고 있는 하선은 점점 왕으로써의 통치에 관심을 갖게 되고 수랏간 나인인 사월이에 대해 알게 된 후 백성들을 위한 대동법을 펼치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중전을 몰아내려는 세력다툼으로 인해 누명을 쓴 유정호를 내주게 되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그날 밤 중전은 하선을 찾아와 자해를 하려고 하자 유정호를 풀어준다고 약속하고 다음날 약속대로 유정호를 풀어준다. 예전과 다른 따뜻함을 느낀 중전과 함께 있던 하선에게 도부장이 갑자기 칼을 겨눈다. 전날 하선의 거친 손을 보고 의심을 한 것이지만 중전이 자신의 가슴에 있는 점을 알고 있는 하선의 편을 들어 위기를 넘기게 된다. 이후 하선은 도부장을 불러 자신에게 칼을 겨눈 건 죄가 아니나 죽음으로 죄를 대신하려 했던 것이 죄라는 말에 도부장은 크게 감동하게 된다.
보름 만에 정신을 차린 광해군은 다시 궁으로 돌아가기 전 대신 왕 노릇을 했던 하선을 죽이라고 명한다. 그리고 박충서는 어느새 가짜 왕에 대해 알게 되고 중전 역시 소문을 듣고 확인에 나서 결국 하선은 가짜임을 들키고 만다. 이후 중전은 허균에게 모든 것을 듣게 된다. 그렇게 왕연기를 끝낼 준비를 하는 하선과 허균. 궁을 나가기 전 하선은 허균에게 사월이의 어미를 찾아 같이 살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다음날 마지막 상찬에 백성은 아랑곳없고 오직 황제에 대한 예를 중시하는 관리들 때문에 폭발하고만 하선은 그 무엇보다 내 백성이 소중하다며 울분을 토해내고, 그의 말에 다시 한번 마음이 움직이는 허균과 조내관. 결국 박충서는 절도사를 시켜 한상궁을 협박하여 사월에게 하선의 팥죽에 독을 넣으라고 하지만 사월이는 왕을 대신해 독을 먹고 죽고 만다. 한상궁의 실토에 하선은 절도사를 잡아들이게 하며 관리들과 강하게 대립하게 되고 결국 왕에 대한 의혹으로 반란을 꾀한다. 허균은 하선에게 궁을 떠나라고 하지만 사월이의 죽음에 분노한 하선은 말을 듣지 않는다. 백성을 위하는 진정한 왕이 면모를 가진 하선. 허균은 그를 진짜 왕으로 섬기려 하지만 다른 이들의 희생을 원치 않는 하선은 결국 거절하고 궁을 나간다. 그리고 진짜 광해가 궁으로 복귀하며 결국 박충서 일당은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궁을 떠나는 하선을 죽이라는 명을 받은 도부장. 하지만 이미 하선을 진정한 임금으로 인정한 그는 결국 사월이처럼 목숨을 바쳐 하선을 구한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천만 배우들과 국내 평점 및 해외 평점과 반응
2012년 개봉한 추창민 감독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이병헌이 1인 2역의 최고의 연기를 펼쳤으며, 허균 역의 류승룡과 단아한 중전역의 한효주 그리고 우직한 도부장 역의 김인문까지 천만 관객 배우들 다운 미친 연기를 실컷 감상할 수 있다. 영화의 최종 관객수는 1,232만 명으로 천만을 가뿐히 돌파했으며, 영화의 평점은 네이버 9.25점, 기자/평론가 7.27점 IMDb 7.8점이며, 로튼토마토의 비평가 지수가 100% 로 외국 영화 플랫폼에서도 아주 좋은 평점을 받았다. 요즘도 공중파나 영화 채널에서 가끔 방송되기도 하는데 봐도 봐도 정말 잘 만들어진 영화인듯하다.
영화 속 역사 인물, 폭군 광해군
광해군은 임진왜란 때 세자로 책봉되어 전쟁을 잘 지휘하여 왕위에 올랐으며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펼쳤다. 그로 인해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줬던 명나라의 미움을 사게 되고 결국 명나라는 광해가 적통 계승자가 아닌 것을 문제 삼아 장남인 임해군으로 임금을 바꾸라고 요구하였다. 왕권을 지키기 위해 광해는 임해군과 인목대비가 낳은 영창대군을 유배 보내 죽이고 인목대비도 폐위하고 서궁에 가두게 되는데 이것이 명분이 되어 인조반정이 일어나게 된다. 인조와 서인 세력은 반정을 일으킨데 대한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광해가 시행했던 모든 정책들을 깍아내리고 폭군이라는 오명까지 씌우고 만다. 사대주의를 강조하다 병자호란으로 백성들을 고통받게 했던 인조에 비하면 광해군이 펼쳤던 대동법과 중립적인 외교는 백성을 위한 정말 훌륭한 정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그를 폭군으로 기록하고 있다.